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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일기

의무를 소홀히 한 죄

글쓴이 : 안수정 2021-01-31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와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깨닫게 하소서.’ 가톨릭 기도서에 있는 반성의 기도에 나오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의무를 소홀히 한 죄에 대한 나눔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단 하나의 의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각자의 삶이라는 터전 안에서 행해야 할 수 개의 의무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갈림길에 놓여 있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무를 소홀히 한 죄란 어떠한 것을 뜻하는 것일까요? 저는 여기에서 의무>사랑이라고 바꾸어 표현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의무라는 범주 안에 사랑이라는 계명을 넣어 본다면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들이 조금은 더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시나요? 그렇지 않으시다고요? 사랑이라는 것이 더 어렵고 낯설게 다가오신다구요? ^*^ 그럼, 성경에서 소개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한 번 살펴볼까요?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고린토 13장 4~8절) 저는 고린토서에 나오는 위 구절을 읽을 때면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 본다면 처음보다는 그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으시나요? ‘예수님은 참고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친절합니다. ..... .... 예수님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의무를 소홀히 한 죄 > 사랑을 소홀히 한 죄 > 예수님을 소홀히 한 죄 예수님을 소홀히 한 죄에 대하여는 아마도 각자가 묵상하는 소재나 주제들이 매우 다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의 경우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을 반복해 나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식사 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따아(따스한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혹은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를 A라는 방법으로 실행할지, B라는 방법으로 실행할지는 온전히 우리들의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허나, 그 선택의 과정 안에서 예수님을 배제하는 것은, 삶을 대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와는 매우 동떨어진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 예수님을 밀어내려 한다고 해서 밀쳐지는, 예수님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십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영광을 받고자 애쓴다 하더라도, 그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도 기쁨도 영광도 그리스도를 떼어내고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인간 혼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못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때가 차면 바람처럼 스러지게 될 것들입니다. 성체를 모시는 순간에만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 말미에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는 사제의 말씀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또 다른 계명이 되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의무=사랑=예수님=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의무를 소홀히 한 죄 사랑을 소홀히 한 죄 예수님을 소홀히 한 죄 복음을 소홀히 한 죄.... 우리가 삶을 마주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 자신이 속해야 할 참된 삶의 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해 봅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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