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 John
Fr. John
현정수 신부의 공식 웹사이트

Fr John 현정수 신부님 공식 웹사이트 와서 보라

매니아일기

"오너라."

글쓴이 : 안수정 2021-01-10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모 피정 중 고해성사실에서 들려왔던 신부님의 훈화였습니다. 짧고 강렬하게 다가왔던 이 말씀 한 마디는, 어둠 속에서 번개를 만난 듯, 강렬히 다가 왔었고 저는 크게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순간을 멍하니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몇 가지의 악습과 무던히도 싸우던 시기었기에,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 악습들을 고해사제께 고백하고 매우 떨리며 긴장한 상태로 곧 있을, 사제의 훈화를 매우 조심히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허나,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라는 가르침은 당시 제가 고백했던 악습들과는 (외관상) 그다지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듯 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수 없었던 제 자신의 내밀한 내적 흐름을 하느님께서는 아시고 사제를 통해 당신의 계명을 제게 전해준 것이었습니다. 늘 조급해하며 살아가고 무언가를 빨리 끝내고 빨리 이루는 것이 마치 그것이 가장 옳은 일인 것처럼 아니, 더 나아가 그러한 삶이 상대를 이기고 그 위에 올라서고 승자가 되는 것인마냥 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삶을 대하는 저의 그러한 태도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이 선이 아닌 악이라고까지도 성찰을 해 본 적 또한 없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제 입으로 고해를 했던 적도 없었겠지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저는 고해실에서 위와 같은 훈화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애 단 한번이었습니다. 그러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신을 괴롭혀왔던 조급함이나 성급함에서 보다 자유로워지셨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실체가 없는 허상에 쫓기듯이 그렇게 순간순간을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 이후로 7년 이라는 적지 않은 날들이 지났음에도 저는 여전히 가끔은 불안과 예민함 속에서 긴장된 시간들을 겪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혹자는 저에게 또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그리고 그 훈화를 통해서 치유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훈화를 들었다면, 쫓기는 듯한 조급함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여전히 당신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오늘만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난감한 질문들에 저는 과연 어떤 답변을 해 드릴 수 있을까요.. 저 또한 같은 질문을 하느님께 다시 여쭤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때, 저의 아픔을 듣고 계신 분이 고해사제가 아니라 임마누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30년 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스도를 저는 그 순간 고해실 안에서 대면해 오고 있어왔다는 것을 제 온 존재를 걸고,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고해성사는 제가 하느님의 얼굴을 유일하게 뵈올 수 있는 거룩함의 시간이 되었고 가장 설레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 고해성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다채로운 모습으로 활동하시는, 당연히 흠숭받으셔야 할 (야훼이레) 은총의 계약이 머무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치유와 용서를 통한 자유로움(해방)을 주관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마땅히 하느님이시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치유와 용서의 과정 안에서 당신의 자녀이자 피조물인 우리에게, 저희가 해야 할 몫의 일부를맡겨두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오너라.”. (마태복음 14장 29절: 물 위를 걸으시다.) 오늘도 저는 예수님을 따라 물 위를 걷고자 합니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사도 베드로처럼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합니다. 허나, 허우적대면서도 버둥거리기 시작하면서도 주님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다시 힘껏 제 팔을 잡아 끌어 올리십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물 밖으로 건져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그러한 것입니다. 오늘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 등으로 자신의 불안감 속으로 빠져들다가도, 여전히 손을 내미시는 그분의 오른팔을 잡고 좁은문을 향해 좁은 길 위를 끊임없이 나아가야하는 하느님의 여행자인 것입니다. 알렐루야. A-men.


댓글을 남기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