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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일기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세상에서 함께하는 마음

글쓴이 : 김영태 2020-08-29

저는 커피를 매우 좋아합니다. 커피 이론이나 원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루에 보통 4~5잔 정도 마시고,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십니다. 더운 것을 싫어하지만, 커피만큼은 따뜻해야 제맛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휴일 아침에 일어나면,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인 다음, 정성스럽게 드립을 합니다. 처음 커피를 내려 마실 때는, 포트에 물을 끓이고 그 자체로 물을 부었습니다. 물을 붓는 속도와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 작은 핸드 드립 주전자를 샀습니다. 한 주전자로 한 잔의 커피가 나옵니다. 보통 2번 정도 내려 마십니다. 그렇게 기본으로 아침에 2잔의 커피를 마시게 됩니다. 글을 쓰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날이면, 연거푸 4잔까지 마시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휴일 아침 루틴에 따라,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갈고 드립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커피를 담아내는 유리 주전자가 깨져서, 텀블러로 대체했습니다. 약간 높긴 했지만, 몇 번 사용한 경험으로는, 나름 괜찮았기에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물이 절반 정도 내려갔을 때쯤, 드립 주전자를 내려놓으려다 텀블러를 건드렸습니다. 텀블러는 그대로 넘어졌고, 물에 젖은 커피 가루와 커피가 싱크대 전체를 덮어버렸습니다. 싱크대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어 올리면서, 물티슈와 키친타월로 닦아냈습니다. ‘허무’를 넘어 ‘허망’했습니다. 공복에 넘어가는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의 행복이 날아간 것이 그랬습니다. 물건이 담겨있는 쟁반 바닥 안쪽 깊이까지 들어간, 젖은 커피 가루를 닦는 것이 그랬습니다. 누리고 싶은 작은 행복이 날아가고, 정성을 들인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그랬습니다. 커피를 쏟은 것은 아주 미약한 것이지만, 말할 수 없이 허망함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허망한 장면을 꼽으라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입니다.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이렇게 위대한 예언자의 죽음치고는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헤로데 임금은,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 요한을 감옥에 가둡니다. 아내가 된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헤로데 임금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헤로데 임금을 즐겁게 합니다. 헤로데 임금은, 딸에게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으니 말하라고 합니다. 딸이 헤로디아에게 무엇을 청할지 묻자, 요한의 목을 청하라고 합니다. 헤로데 임금은 약속을 어길 수 없어, 경비병을 시켜 요한의 목을 가져오게 합니다. 예수님에 앞에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는, 그렇게 허망하게 순교하게 됩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의 하나가, 허망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코로나19’로 희생하시는, 공무원분들이나 의료진분들은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잠잠해질 만하면 터지는 상황을 보면서, 속이 터지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허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행동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자신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일부 생각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명분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의롭지 않은 행동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지금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의 허망함을 느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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