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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아일기

??독서후기??[나르치스와 골드문트 by 헤르만 헤세

글쓴이 : 안수정 2024-03-31

??독서 후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by 헤르만 헤세] ??중학교 3학년 때, 나의 친구로부터 지와 사랑이라는 책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그 시절에는 현재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아닌 지성을 상징하는 <지> 그리고 감성과 정서를 상장하는 <사랑>이라는 문구를 써서 출판되었던 시기이다. ??허나 30년이 지난 지금 지와 사랑은 사라지고 여기에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출판물의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의 의도로만 작품을 해석하려하기보다 독자의 보다 큰 상상력과 견해를 존중하고자 했을 출판사의 배려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목이 어떻든간에 이 작품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두 젊은이의 사상과 가치관, 생활 등의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다.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입회 한 두 청년의 만남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무언의 이끌림을 통해 그들의 관계가 보다 깊은 정신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어떤 차원으로의 우정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허나 어머니에 대한 골드문트의 상실감과 비애 그리고 채워질 수 없는 그리움을 꿰뚫어 본 나르치스에 의해 골드문트는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핵심감정을 어렴풋이 직면하게 되고... ??무희였던 그의 어머니... 결혼 후 정숙하게 살라는 남편의 간섭과 집착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위해 집과 골드문트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녀만의 세상으로 새가 되어 날아간 어머니 그 어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 수도원을 떠나 긴 방랑의 길을 시작하게 된다. ??방랑이라는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대부분 노숙을 하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자신이 지닌 외적인 아름다움과 젊음의 향기를 한껏 뿜어내며 뭇 여인네들을 희롱하며 그들과 유희를 즐기는 등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방랑에의 훼방꾼(?)을 둘이나 살해하게 됨에도 골드문트는 쉽사리 이 방황을 끝내지 못한다. ??도대체 언제쯤 골드문트는 이 기이한 방랑벽에 종지부를 찍고 그 자신이 늘 그리워하던 나르치스가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결말은 책 후반부에 나오기에 나로서는 그의 멈출 수 없는, 멈춰지지 않는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불화산을 잠재우기 위한 방황의 시간을 어떤 비평이나 판단 없이 잠자코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골드문트가 우연히 고해사제를 만나 자신이 살인을 했음을 그리고 여인들을 희롱하였음을 고해할 때와 친구 나르치스의 영을 담아 새긴 조각상 요한을 완성하였을 때는 나르치스의 고뇌와 상처가 서서히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에겐 자신의 내면과 투쟁해야 할 무엇이 더 남아 있었던 것이었을까.. ??마음 한 켠에선 끊임없이 나르치스와 수도원을 그리워하면서도 자신 안에 남아 있는 무희였던 어머니에 대한 상념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하였던 것인가 그의 방랑의 시간은 쉬이 멈추어지질 않는다. ??골드문트 그의 외적 젊음과 아름다움이 더이상 뭇여인들의 환심을 사기 어려울 때에서야 그는 18살 소년의 감성이 묻어 있던 그 곳, 나르치스가 있는 그곳으로 되돌아간다. ??다만 이제 더이상 골드문트는 자신의 욕망과 정서와 감정을 살인과 유희로 뿜어내는 광기어린 상처입은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상을 투영한 성모 마리아 상을 나르치스 앞에서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희로애락의 원천을 승화시킨 보다 절제된 상처입은 치유자로 변모하게 되는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병환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누구는 나르치스처럼 견고한 지성과 지적 어린 감각 그리고 냉철한 판단으로 자신 그리고 세상과 화해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골드문트처럼 충동어린 판단과 모험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만이 온전히 받아내야 할 혼란과 뒤엉켜 싸우면서 화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인가... 아니 그대는 어느 편에 서서 지금 이 시간을 마주하고 있는가.. ??나는 두 가지의 양상이 혼합된 상태로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역시 골드문트처럼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아니 그렇게 되어지지 않는 나의 정염의 불꽃을 태울 시간이 넉넉히 필요했으며 또 동시에 나르치스처럼 내 본성이 너무 앞서나갈 땐 사고를 바탕으로 냉정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도 필요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는 삶에 대한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까.. ??나역시 다시 방황과 방랑의 시간을 가지기에는 청춘의 열정과 뜨거움이 이미 내 정신적 범주 안으로 스며들어가고 있는 시점에 와 있는 것 같다. 마치 중년의 골드문트처럼 말이다. 물론 더이상 내면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모험을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아픔들을 느껴와서 더이상 지속한다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혼돈과 혼란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끌어모아 보다 현명하고 슬기로우며 또한 모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낼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어진다. ??나는 손재주가 없으니 골드문트처럼 조각상을 완성하진 못할 것 같고... 무언가 나라는 고유한 본성을 지닌 나 자신만이 창조해내고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어떤 세계에 새로이 한 발 한 발 들여놓고만 싶어진다. ??그리고 골드문트 곁에 어머니와 나르치스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신비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어떤 존재를 발견하고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미 그는 내옆에 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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