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사랑 함께 ]
매니아일기
독서후기 [지하로부터의 수기 by 도스토예프스키]
글쓴이 : 안수정 2024-04-27
이 책 저 책 뒤져가기 시작하는 요즘 나는 고전을 읽을 때가 제일 평안하고 내적으로 충족되는 느낌이 든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순탄치 않았던 상황에서 저자 혼자만의 독기로 남아 있던 내면의 역량이 글을 통해 승화된 느낌이었다.
19세기 당시 러시아 봉건 체제의 붕괴 및 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 체제로의 전환 과정 및 러시아 황실의 서구화 정책으로 인한 외래 사상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러시아 고유의 문화적 요소들과의 갈등을 일으켰던 지식인들의 정신적인 저항을 글로 표현한 것 같았다.
그 시대적 흐름 안에서 정답을 찾지 못하는 기나긴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면서도 시대적 흐름에 편양하느니 의식적인 무기력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주인공인 <나>로 대변되는 도스토예프스키!
생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불온서적을 읽는 다는 이유로 당시 러시아 황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사형중지명령으로 간신히 목숨은 구했다. 허나 4년간의 수용소 생활 그리고 4년 동안의 병역 의무..이 해괴하고 고통스러웠을 시간들 안에서 아마도 저자는 기나긴 정신적인 사색을 하며 버텨왔으리라 짐작되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과 사고를 통하여 얻어진 깨달음 등등과 얽히고 설킨 그 무언가들을 이 책에 한가득 토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구성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는 스스로 지하실에서의 삶을 선택하여 외부와의 철저한 차단아래 놓여 있는 주인공 <나>가 내면의 감정을 털어놓고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다.
2부는 1부에 비해 가독성이 조금 나은 편이다.
화자가 자신과 서먹한 사이의 동창생들의 술자리에 참가한다.
그런데 주인공을 탐탁치 않아했던 그들과 다투게 되고 그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장면이 나온다
이후 일행은 사창가로 향허는데 주인공은 자신이 받은 모욕을 동창생의 따귀를 갈겨주겠다며 따라나선다. 하지만 그들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복수는 실패하고 대신 화풀이 삼아 옆에 누운 창녀 리자에게 감상적이며 지적 우월감이 섞인 말들을 끝도 없이 늘어노으며 그녀를 도발한다.
다음날 잠에서 깬 주인공은 이 모든 일들을 후회하며 벌벌 떠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이후의 주인공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을까?
여전히 지하실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자연법칙을 강조하고 내세우는 사회로부터 떨어져 고립된 채 외로이 그렇게 늙어가지는 않았을까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만 갖고 유추해 본다면 자신의 지하실에서 나와 세상 한복판에 우뚝 서게 될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후일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출판한 책들이 널리 알려지는 등 그가 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러시아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니 어쩜 그가 느껴왔을 절망감과 소외감 그리고 러시아 사회를 향한 복수심 등의 어두움들은 차차 희미한 빛으로나마 변형되어, 충만까지는 아니더라도 더이상 슬픔에 함몰된 이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서서히 날갯짓하는 또다른 도스토예프스키가 되어 있었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나는 내면의 공허함과 버려짐에 대한 공포로 쓰라림을 느낄 때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지하 인간 = 또다른 이름의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고 싶어질 것 같다.
그 곳이 나에겐 도피처요 새 살이 돋기 위해 거쳐야 할 숙명과도 같은 기다림의 은신처요 기나긴 치유의 시간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